왜 일하는가?

 

참으로 마음이 답답해지는 질문이다.

 

지금 나는 70%는 경제적인 이유로, 25%는 자아실현을 위해, 그리고 나머지 5%는 기타의 이유로 일하고 있다.

가끔 100% 경제적인 이유로 일을 하는 사람도 보고, 80% 이상 자아실현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도 본다.

물론 외부로만 보여지는 것들을 근거로 한 나의 주관적인 판단이지만.

 

저자가 책을 통해 하는 이야기를 100% 나의 인생에 대입하기는 물론 어렵다.

일단 그는 불굴의 의지로 작은 기업을 세계 몇 위안에 드는 기업으로 만든 성공한 기업가이며 여러가지로 문화적인, 사회적인 개념이 다른 국가와 시대에서 태어나 일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또한 과연 그럴까?

 

인격을 드높이기 위해 일한다.

이것이 저자가 하는 말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

얼핏 잘 이해가 안가는 말이지만 곰곰히 생각하다 보면 공감이 되는 말이다.

성질 드러운 인간들을 직장 곳곳에서 만나 그들과의 인터랙션을 통해 인격을 수양한다. 이런 의미는 아닐 것이다.

 

결국, 무엇이든 그것을 정말 열심히, 최선을 다해서, 전력을 다해서 한다면 그것은 나의 인격을 갈고 닦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너무나 답답하고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때로는 답답하고 진부한 이야기가 진리인 경우가 많다.

 

스물 다섯살때 난 정말 재미있게 회사를 다니고 있었다. 작은 홍보 대행사였는데, 무엇보다 사무실 분위기가 좋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좋고, 또 일이 재미있었다. 한시간 반 넘게 버스를 타고 출근해야 했고, 야근을 밥먹듯이 해야했고, 월급은 쥐꼬리 같았지만 그때 나는 밤에 잠들기 전에 이렇게 생각했다. '아 빨리 자고 일어나 내일이 와서 출근했음 좋겠다!'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대사 같지만, 그땐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은 아니어도 자주.

그런데 딱 10개월 다니고 그 회사를 그만둘 때 내가 내세운 이유는 이거였다. "돈 많이 주는 대기업 다니고 싶습니다." (참,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이런 말 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나도 정말 어지간하다...)

그렇지만 나는 "돈 많이 주는 대기업" 취직에 실패했다. 그리고 참 빙빙 둘러서 지금 결국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긴 하지만, 어찌 된게 "돈 많이 주는" 부서는 아니라서 일반적인 대기업 사원들에 비해 급여는 참 적게 받고 일하고 있다. 그래도 행운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스물다섯살때 다니던 회사에서 느낀 만큼 재미있게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일하다가 가끔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감동을 맛보기도 한다. (물론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스트레스를 느낄때도 많지만.)

 

 

나의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받는 돈에 대한 가치에 맞게 그에 상응하는 책임을 진다는 것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나라는 인간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통해서 나 자신을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인간인지 내가 하는 일을 통해 드러나는 것이다. 나는 무책임한 인간인가, 꼼꼼한 인간인가, 정확한 인간인가, 어떠한가.

그래서 난 자신이 하는 일을 하찮게 이야기 하는 사람, 자신이 다니는 회사에 대해 하찮게 이야기 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인격과 가치를 남들에게 하찮게 이야기 하는 것이나 다를바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왜 일하는가라고 물었을때 인격을 드높이기 위해 일한다 라고 대답한다는 것이 전혀 개연성 없는 답은 아닌 것이다.

나는 일을 열심히 하는 것을 통해 나의 삶을 열심히 살고, 일의 결과를 멋지게 내는 것으로 조금씩 조금씩 내 인격을 쌓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일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나의 삶도 그만큼 더 사랑하게 되는 것이리라 생각한다. (물론 이는 일'만' 사랑하는 것과는 다른 것임은 설명할 필요도 없겠지.)

 

그렇다면 인격을 드높이기 위해서 일을 한다. 이것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나는 왜 일하는가? 이에 대한 또 다른 답들은 앞으로도 계속 끊임없이 생각해야 할 질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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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나모리 가즈오 - 왜 일하는가  (0) 2012/0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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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에 관한 영화라면 이 정도는 돼야지.


영화 전체를 설명해 주는 음악과 이미지들로 도입부가 시작된다.

도입부는 영화 전체를, 1부는 2부의 이야기를 함축적으로 암시한다.

특히 도입부가 너무나 아름다운데, 도입부만 보아도 한 편의 영화를 봤다는 느낌이 들 정도.

1부는 여동생 저스틴의 결혼식, 그리고 그 예식이 어떻게 파국으로 치닫는지를 보여주고, 2부까지 다 보고 나면 1부의 세부적인 요소 요소들이 2부에서 이야기가 어떻게 흐르게 될 것인지를 암시하며 그려내고 있다는걸 깨닫게 된다.

특히 1부에서 어려운 상황들에 주체가 되어 강하게 버티어 주던 캐릭터가 (형부 - 언니 - 동생) 2부에선 거꾸로 순서대로 (동생 - 언니 - 형부) 가장 나약하게 그리고 가장 의연하게 상황에 대처하는 모습은 인상적이다. 


도입부 부터 영화가 끝나는 장면 직전까지 한걸음에 달려가는게 아니라 천천히 한발짝씩 천천히 나아간다. 감정을 하나 하나 조심스럽게 쌓아올려서, 마지막 장면에서 억지로 충격이나 감동, 혹은 그 이외의 감정을 느끼게 되는 것이 아니라 조용히 약간은 더디고 그러나 지나치게 설명적이진 않게 조금씩 관객을 이끌고 나가서 관객은 스스로도 인지하지 못한 사이에 감정의 폭발까지 다가가게 만드는 것이다. 굉장하다고 느꼈다. 엇.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이렇게 끌려가고 있었군. 이런 기분이랄까.


커스틴 던스트는 연기가 아니라 그냥 자신의 평소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샬롯 갱스부르는 후반부로 가면서 점점점 더 빠져들게 되고, 특히 키퍼 서덜랜드의 역할과 연기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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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아 Melancholia  (0) 2012/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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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지적했다.
만약 백쉰 살 먹은 사람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그대로 간직한다면, 우리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엄청나게 방대한 경험을 쌓게 될 것이라고.
우리의 먼 후손들과 비교하자면, 현재 우리에게 격언처럼 지혜를 상징하는 솔로몬은 미숙한 청소년에 불과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사춘기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모든 동물에게 나타나는 사춘기는 탄생부터 부모의 통제에서 벗어날 때까지의 기간이다. 고양이에게는 단지 몇 달이고, 다른 종에게는 훨씬 더 짧을 수도 있다. 인간에게 그 기간은 비교적 길다. 문화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열두 살에서 열여섯 살까지의 기간이라 말할 수 있다. 그 다음에 통과 의례가 있고 성인이 된다.

...
그렇다면 이제 평균 수명이 백쉰 살인 인류를 상상해 보자.
통과 의례는 쉰 살로 넘어가게 될 것이다.
"말을 낮추어도 이해하게."
"물론입니다. 저는 이제 겨우 쉰 살인데요....."
그렇지만 훌륭한 영양 섭취로 인해 (오늘날의 열여섯 살 청소년은 백 년 전의 열여섯 살 청소년보다 더 크고 튼튼해지게 되었다) 생식 능력이 줄어들거나 늦춰지지는 않을 것이다. 
말하자면 인간은 여전히 청소년기에 성생활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쉰 살의 나이까지 자식을 낳지 말라고 설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무책임한 아빠 엄마들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마치 오늘날 갑자기 열세 살 소녀들이 모두 자식을 낳기 시작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사회는 그 아이들을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다. 어머니 (그리고 아버지)는 아직 성숙하지 않아서 적절하게 돌볼 수 없기 때문이다.
서른 살 또는 마흔 살의 성숙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식을 낳기 시작하는 사회에서는, 국가가 개입하여 그들에게서 자식을 데려와 집단 교육 기관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흥미로운 예상을 할 수 있다.
즉 수명 연장으로 인해 독재적 통제와 스파르타 식 교육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1993)


움베르토 에코의 나이에도 활발하게 두뇌를 활용하고, 활발하게 사회 활동을 하면서, 자신이 지닌 지적 능력을 끊임없이 발산해 내는 사람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지만 그만큼 멋진 일이라고 생각한다.
평생동안 책을 읽기도 급급한 사람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는 이 세상에서, 어떤 사람은 자신의 책장의 일부를 든든하게 채울 만큼의 책을 직접 쓴다는 것을 생각하면 나는 왠지 이를 악물고 살아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훕.
유머감각을 지닌 지식인이 되는 것. 이 참으로 이룩하기 힘든 과제이지만, 누군가는 이렇게 그런 사람이 되어 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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